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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한 발은 브레이크, 다른 발은 액셀…엇박자 강남대책 효과낼까

이지용 기자
입력 : 
2018-01-18 18:00:16
수정 : 
2018-01-18 18: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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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집값 압박나선 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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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문 닫은 중개업소</b><br>정부가 이르면 이달 말부터 특별사법경찰을 통해 불법 부동산 매매 등을 강력히 단속하기로 한 가운데 18일 찾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가 평일임에도 문이 닫혀 있다. [김호영 기자]
참여정부 때인 2005년 이후 12년 만에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한 전방위적 '세무조사' 카드가 다시 등장했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2005년 투기 관련 세무조사에 투입된 조사 인원은 총 3094명에 달했다. 세무조사 건수는 305건, 고발 건수는 총 46건, 탈루 등 적발 행위에 따른 부과세액은 4077억원에 달했다. 당시 전체 77%에 달하는 235건이 강남3구에 집중됐다는 점은 당시 세무조사가 강남 투기를 차단할 목적이었다는 점을 명확히 말해준다. 정부가 18일 강남 집부자들의 탈세 사례를 공개하면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선 목적도 판박이다. 오는 4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하반기 보유세 개편 등에 앞서 단기적인 거래 차단을 통해 과열된 시장을 냉각시켜 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를 볼 때 집값 안정 효과는 미미하다. 전방위적 세무조사에도 2005~2006년 강남3구를 비롯한 소위 버블세븐 지역 집값 상승률은 최고 70%에 달했다. 문재인정부가 작년 5월 출범 이후 여섯 차례 부동산 관련 대책을 낸 데 이어 고강도 세무조사, 특별사법경찰을 동원한 단속 등 전방위적으로 압박했지만 시장에는 냉소가 흐르고 있다. 최근 정부의 각종 규제 발표 기사에는 "제발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댓글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주택 수요자들은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으로 인한 혼란이 시장 불안감과 변동성을 키운다고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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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집값 잡기가 이처럼 실패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엇박자'이다. 수요를 줄이겠다며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있지만 이미 8·2 부동산대책에서 다주택자를 규제해 '똘똘한 한 채'로 수요가 몰리는 상황을 초래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올해부터 신(新)총부채상환비율(DTI) 도입 등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돈줄이 막히기 전에 더 빨리 집을 사야 한다는 수요가 움직인 탓"이라며 "정부가 잇단 규제를 발표하는 통에 내 집 마련에 느긋했던 무주택자들 사이에 불안감이 번지면서 되레 수요를 자극한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 교육정책 변화도 수요에 기름을 부었다.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의 학생 선발 우선권을 폐지하기로 한 정부의 교육제도 개편 방향 발표 이후 명문고 진학이 가능하고 학원이 밀집한 강남으로 수요자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도곡동의 L 중개업소 대표는 "강남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가 자사고 폐지 방침을 내놓고, 강남 8학군 시절로 되돌아간다니 이런 엇박자가 어디 있느냐"며 "새 정부 경제정책자들은 무지하거나 무능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국토교통부 주택매매 거래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주택매매 거래량은 7만2000건으로 전월보다 4.7%, 전년 동월 대비로는 17.5% 줄었다. 수도권도 3만7441건으로 0.3% 줄었다. 반면 서울은 1만3740건이 거래돼 전월 대비 14.1%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강남4구 거래량은 3147건으로 전달(2553건)과 비교해 무려 23.3% 늘어났다. 강남4구는 지난 5년간 12월 평균 거래량과 비교해도 6.0% 증가했다. '똘똘한 한 채'와 '교육 특구' 두 가지 요인으로 인해 강남에 수요가 몰리며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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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엇박자도 만만치 않다. 서울시는 지난해 9월 잠실주공5단지에 최고 50층짜리 아파트를 짓는 재건축안을 승인했고, 이후 송파구 아파트가 급등했다. 이에 탄력을 받아 인근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다른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까지 사업 속도를 냈다. 정부가 재건축을 규제하는지 장려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메시지가 부동산 시장에 전달된 것이다. 잠잠했던 수요에 불을 지른 반면, 각종 규제는 시장에 '공급 축소→희소가치 급등'이란 역신호를 날렸다. 소위 '재건축 부담금'으로 불리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대표적이다. 초과이익환수를 피하기 위해 지난해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사업장 때문에 1~2년 정도는 재건축 일반분양이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재건축 부담금을 내야 하는 올해부터는 사업 속도가 줄줄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2~3년 후부턴 재건축·재개발의 공급 절벽이 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울러 정부가 8·2 대책을 통해 조합원의 지위 양도, 입주권 전매를 전면 금지하고 신축 아파트 분양권에 양도세를 50%로 일괄 중과하기로 한 것도 강남권 주택 보유자들이 '버티기'에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한 꼴이 됐다.

올해 말 입주 예정인 송파구 가락동 '송파헬리오시티(옛 가락시영아파트)'는 전체 가구가 9500가구에 달하고, 프리미엄이 최소 3억~4억원 형성돼 있지만 분양권 매물은 씨가 말랐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참여정부 당시 초과이익환수 등 강력한 재건축 규제로 잠실 일대 재건축들이 속도를 낸 이후 규제가 시행에 들어가면서 한동안 재건축사업이 끊기다시피 했다"며 "장기적으로 서울의 공급이 줄어들어 서울 주택의 희소가치만 높여주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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