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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잡기 볼모된 `나인원한남`…분양보증 52일째 지체

용환진 기자
입력 : 
2018-01-21 17:35:51
수정 : 
2018-01-22 08:5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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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천만원대 최고분양가…"집값상승 부채질" 우려한 HUG, 이례적으로 길게 끌어
타단지 대부분 사흘만에 완료…허용범위 가격이라 명분없어
"고급용이라며 비싸게 땅 팔고 분양가 막아" 이중성 비난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용산구 한남동에 들어서는 고급주택 '나인원 한남'(조감도)의 분양보증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집값 안정화'와 '합리적이고 일관된 의사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외인아파트 용지에 335가구를 지으려는 나인원 한남은 지난해 12월 1일 분양보증신청을 한 이후 52일째 공전하고 있다. 연말연시가 중간에 낀 것을 감안하더라도 분양보증승인이 이처럼 늦어진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거의 모든 단지가 분양보증을 신청한 지 3일 이내에 HUG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6년 8월 분양했던 디에이치 아너힐즈(개포주공 3단지) 정도가 분양보증신청이 세 차례 반려돼 한 달 넘게 지연됐을 뿐이다.

나인원 한남 시행사인 디에스한남은 3.3㎡당 6000만원대 초반의 평균 분양가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던 성수동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의 평균 분양가 4750만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사실상 정부 입김을 강하게 받는 HUG 입장에서는 정부가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나인원 한남 분양가를 받아들이기가 부담스럽다. 나인원 한남 분양보증을 승인하면 강남 집값 상승세에 기름을 끼얹었다고 여론의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HUG가 나인원 한남의 분양 승인을 단번에 거절할 수도 없다. 나인원한남이 제시한 분양가가 HUG 분양보증 승인의 허용 범위 내에 있기 때문이다. 작년 3월 31일부터 시행 중인 HUG의 '고분양가 사업장 분양보증 처리 기준'에 따르면 평균 분양가가 입지, 가구 수, 브랜드 등이 유사한 인근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의 11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분양가 산정이 가능하다.

이 기준에 따르면 나인원 한남의 평균 분양가는 인근 비교 대상인 한남 더힐 매매가 6400만원의 110%인 7000만원 선까지 가능하다. 하지만 디에스한남은 이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분양보증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럼에도 HUG가 디에스한남 분양보증신청을 거절하면 업무 처리에 원칙이 없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이에 HUG는 나인원 한남의 분양보증신청을 깔고 앉은 채 나인원 한남이 분양가를 스스로 낮출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분양보증 처리기간이 늦어질수록 피해가 커지는 것은 나인원 한남이기 때문이다.

기존 최고 분양가였던 아크로 서울포레스트와 나인원 한남을 동일한 잣대로 바라보는 것이 타당한지도 의문이다. 두 아파트 토지비용에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토지비용은 아파트 건설비용에서 가장 큰 원가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다.

아크로 서울포레스트는 1만8315㎡ 용지를 3824억원에 매입했다. 용적률 600%를 적용해 산출한 3.3㎡당 토지비용은 1150만원이다. 반면 나인원 한남 용적률은 145%에 불과해 3.3㎡당 토지비용이 2470만원에 이른다. 토지비용에서만 무려 1300만원이 차이 난다. HUG가 집값 안정을 위해 무턱대고 사상 최고가 경신은 안 된다는 논리를 펼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나인원 한남에 비싸게 토지를 판 주체는 HUG와 마찬가지로 국토교통부 산하에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다. 국토부가 고급주택 용지로 토지를 비싸게 판 후 분양가를 싸게 책정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방침대로 따랐는데 적절한 마진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어떤 업체도 정부 시책에 선뜻 협조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 안정화를 추구하는 정부가 오히려 주택 공급을 억제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강남권 고급 주택의 가격 하락을 유도하려면 고급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상책인데 정부의 보증정책이 오히려 고급 주택의 충분한 공급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다.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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