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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가 살겠단 생각으로 집 지어…이젠 美LA서 실력 보여줄 것"

김동은 기자
입력 : 
2021-06-10 17:34:35
수정 : 
2021-06-10 2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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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현장 누비는 88세 현역 최준명 요진건설산업 회장

1950년대에 건설 처음 발들여
1976년 요진 창업해 45주년

미군 공사 감독과 소통하려고
영어사전 뒤지고 달달 외워
정주영회장이 "우리 회사 오라"

미얀마에 시멘트공장 설립
해외사업으로 새 도전 나서고
성수동 랜드마크 빌딩 건설도
사진설명
요진건설산업을 창업해 88세 나이에도 사업을 직접 챙기는 최준명 회장이 2일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요진건설산업이 오는 16일 창립 45주년을 맞는다. 건설사업은 부침이 심하다. 건설경기가 한번 꺾이면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도 맥없이 쓰러지거나 주인이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요진건설은 1976년 창업 이후 한번도 대주주가 바뀌지 않았다. 사명(社名) 역시 창업 때와 다름없다. 중견건설업체로서는 이례적이다. 창업주인 최준명 회장(88)이 여전히 현장을 돌보면서 회사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요진건설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회사는 아니다. 토목·건설·미(美)극동공병단(FED) 사업 등에 주력하느라 일반 국민과 접점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2010년대 들어 요진와이시티라는 주택 브랜드를 만들어 경기 일산과 송산, 충남 아산 등에 진출하고 호텔 사업도 시작하는 등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다. 변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 회장을 지난 2일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에서 만났다. ―1세대 건설인 가운데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현장에 나가는 1세대로 한정하면 그럴 수 있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건설현장에 직접 나가 공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문제가 될 부분은 없는지를 살폈다. 최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좀 쉬었는데 몸을 추스르면 다시 현장으로 나갈 것이다. 건축물은 한번 만들면 최소 100년 이상 튼튼하게 버텨줘야 한다. 그런 건물을 지으려면 기본을 잘 지켜야 하고 현장이 기본을 지키도록 하려면 직접 현장에 나가 일일이 신경을 써야 한다.

―건설업에는 언제부터 몸담았나. ▷6·25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성상공'이란 회사에 입사해 건설일을 접했다. 벌써 60년도 더 지난 일이다. 몇 년간 현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기왕이면 전문성을 갖추고 싶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1956년 한양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다시 동성상공에 입사해 일을 이어갔다. 당시는 지금처럼 번듯한 도로나 댐, 빌딩을 지을 물자나 기술이 없을 때다. 동성상공은 주로 미군 막사 등을 지어주는 일을 했다. 미군의 까다로운 기준에 맞추려면 건축에 대한 기본 지식이 탄탄해야 할 뿐 아니라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한다. 미군 감독관들에게 할 말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전날 밤 영어사전을 뒤져 문장을 만들고 달달 외워갔다. 의사소통이 잘되다 보니 내가 담당한 현장이 다른 건설업체들과 비교해 늘 품질도 좋고 공기도 빨리 마칠 수 있었다. 당시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이 찾아와 "이직할 의향 없느냐"며 스카우트를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다 요진건설을 창업했다. 사명이 특이하다. ▷요진건설은 1976년에 그동안 모은 돈 500만원을 자본금 삼아 창업했다. 사명은 친형님이 만들어줬다. 임금 요(堯)에 많을 진(溱)을 쓰는데 회사를 번성시키고 이름을 널리 떨치라는 포부를 담았다. 당시는 건설사 이름 지을 때 어려운 한자를 쓰는 게 유행이었다. 상대방에게 명함을 건네주면서 회사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뜻은 뭔지 알려주면서 회사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키는 것이다. 거꾸로 미군들은 회사 이름이 쉽다고 좋아했다. 다른 건설사들에 비해 발음하기 편하고 외우기 좋다고 말했다.

―요진건설은 지금도 미군에서 발주를 많이 받고 있던데. ▷지금은 미극동공병단(FED) 사업이라고 부른다. 미국 정부가 발주하는 주한미군을 위한 시설을 짓는 일이다. 미군 숙소, 부대건물, 항공기 주기장 등 다양한 공사가 포함된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이 발주하는 공사는 품질에 대한 확인과 감리절차 등이 아주 까다롭다. 요진건설은 FED 사업이 요구하는 다양한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술과 노하우를 통해 발전할 수 있었다. 올해는 대한민국 국방시설본부에서 '2020년 FED 현장 최우수 시공업체'로 선정돼 감사패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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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을 개관했다. 영업은 잘되나. ▷지난해 8월 몬드리안 서울 이태원을 개관했다. 옛 캐피탈호텔을 2018년에 인수해 리모델링한 호텔이다. 인수할 때는 이태원이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리모델링 끝나고 개관하기 직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다행히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방문객들이 제법 들어오고 있다. 너무 권위적이지 않으면서 개성을 표출할 수 있게 내부 시설과 인테리어에 공을 많이 들였는데 이게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오나 보더라. 그럭저럭 수익과 비용의 균형은 맞추고 있는 수준이다. 코로나19가 이어지고 있지만 주말이면 내국인 고객들로 방이 꽉 찬다.

―호텔업에 진출한 계기는. ▷호텔업에 처음 진출한 건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일본계 자금이 운영하던 서울 구로의 호텔을 인수하면서다. 이게 지금의 '포포인츠바이쉐라톤 서울구로 호텔'이다. 원래는 다른 용도로 개발하려 했는데 잘 안됐다. 그래서 "우리가 한번 경영해보자"고 했다. 호텔을 경영해보니 소비자 취향만 잘 읽어 대응하면 수익이 괜찮겠더라. 입지 좋은 곳에 호텔을 갖고 있으면 지가 상승으로 인한 차익도 거둘 수 있다. 그래서 이태원에 위치한 호텔이 매물로 나왔을 때 기회라고 판단했다. 앞으로도 괜찮은 입지의 호텔이 매물로 나오면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미얀마에 연간 생산량 100만t 규모의 시멘트 공장을 지었다. 이익을 얻었나.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고 해외 진출을 검토하는 단계에서 처음에는 베트남을 염두에 뒀다. 그런데 다른 기업이 이미 많이 진출해 우리가 경쟁력을 내세울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국가 중 인구도 많고 성장잠재력도 큰 미얀마를 선택했다. 단순히 건설업만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업을 해보기 위해 시멘트 사업을 떠올렸다. 경제성장을 위해선 토목·건설 공사가 꼭 필요하고 그러면 시멘트 수요가 크게 늘어날 거란 계산이었다. 2016년 진출 당시 미얀마와 미국 간 관계가 좋을 때라 미국이 투자를 많이 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며 해외 원조 등을 딱 끊어버렸다. 미얀마 정부와 국민도 실망했겠지만 우리도 실망했다.(웃음) 정치적으로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황이지만 잠재력은 여전하다고 낙관한다.

―미얀마 외에 해외 진출 계획은 없나. ▷미국 LA에서 주택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미 LA 한인타운 인근에 윌셔스트리트 주변 용지를 확보해뒀다. 미국식으로 콘도미니엄, 한국식으로 말하면 아파트를 건설할 수 있는 인허가도 받아놓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쪽은 집이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다. 특히 2028년 하계올림픽이 LA에서 열리는 점과 신규 인구 유입 증가 등을 고려하면 주택사업이 승산이 있다. 연면적 1만3000㎡(약 4000평)의 주거·판매 시설을 만들려고 한다. 우리는 FED 사업 경험을 통해 미국의 시공기술이나 공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이 때문에 미국 현지 시공사를 선정해 직접 시공관리를 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부동산 신규 개발·거래가 가장 활발한 서울 성수동에 복합시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요진건설이 갖고 있는 디벨로퍼로서의 능력과 시공사로서의 역량을 결합한 프로젝트다. 요진건설 주도로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를 설립해 성수동 2가에 연면적 1만9800㎡(약 6000평) 규모의 복합시설을 짓고 있다.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건설업에 60년 넘게 종사하며 꼭 지켜온 신념이 있다면. ▷먼저 신용이다. 처음 요진건설을 설립했을 때 돈을 빌리기가 어려웠다.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협력업체나 시행사와 금전관계는 철저히 지켰다. 남의 돈으로 사업 크게 벌이면 한순간에 휘청거릴 수 있다. 또 1000년을 버텨줄 건물을 지어야 한다. 건물을 지을 때 내가 살 집이란 생각으로 지어야 한다. 팔 집으로 생각하는 건 집 장수이지 건설업자가 아니다.

어린시절 보육원서 생활…아이들에 기회 주고싶어

보육원·여중고·장학재단 운영 "기업은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소중히 여기고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합니다. 적게 벌더라도 베푸는 게 진정한 나눔입니다."

최준명 요진건설산업 회장은 인터뷰 틈틈이 "바른 생각을 갖고 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처님이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 말한 '팔정도(八正道)'와 같은 맥락이다. 이유가 있다. 최 회장은 독실한 원불교 신자다. 1916년 원불교를 개창한 박중빈 대종사는 최 회장의 외가 쪽 친척이다. 최 회장은 어린 시절 원불교가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생활했다. 그의 여동생은 얼마 전까지 원불교 교무(불교의 승려, 천주교의 사제 같은 교직자)를 맡았다. 매년 교단에 지원하는 금액도 상당하다.

―장학사업에 관심이 많다. ▷돈 벌었다고 내 주머니만 채우는 사람은 장사꾼일 뿐이다. 번 돈으로 사람을 키우는 일이 가장 큰 사업이다. 지금은 한국보육원과 휘경학원, 요진어린이장학재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 양주에 위치한 한국보육원은 설립자인 황온순 여사가 작고한 뒤 주변 권유에 따라 이사장직을 물려받았다.

나도 보육원에서 자랄 정도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곳에서 배움의 기회를 얻어 어엿한 사업가가 될 수 있었다. 보육원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어 이사장직을 맡겠다고 나섰다. 서울 동대문 휘경여자중학교·고등학교도 2005년 인수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을 양성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자기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인재를 길러내고 싶다.

▶▶He is… △1933년 전남 영광 출생 △1956년 한양대 건축공학과 입학 △1976년 요진산업(주) 창업 △1988년 요진건설산업 회장 △2005년 휘경학원 이사장 △2018년 글로벌비즈니스평화상 종교평화 특별공로상

[김동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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