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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15억 대출 규제가 부추긴 갭투자…전세값 더 올랐다

이선희 기자
입력 : 
2021-06-18 17:27:18
수정 : 
2021-06-18 19: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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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요자 갈아타기 막는 규제

3040 집늘려 가자니 `15억벽`
임대차법 이후 실거주 매물 뚝

"이러다 학군지 못 갈 수도
전세 안고라도 사고 보자"
전셋값 높은 매물 인기 `쑥`
전세난 맞물려 월세도 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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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못 들어가면 앞으로 (더 올라서) 영원히 못 들어갈 것 같아요. 15억원 초과는 대출이 안 나오니 우선 전세라도 껴서 사놓고 월세를 살아야죠." 최근 서울 은평구 아파트를 팔고 강남으로 '갈아타기'를 준비 중인 주부 김 모씨(39)는 이사 갈 집을 알아보다가 '월세살이'를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처음에는 은평구 아파트가 4년 전 매수할 때보다 2배 이상 올라 이 집을 팔면 용산·서초·강남 등 집값이 더 비싼 동네로 옮길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막상 매물을 찾으니 이사 가고픈 지역은 더 오른 데다 '15억원'이란 벽도 생겼다. 대출이 한 푼도 안 나오니 그나마 전세를 안아야만 살 수 있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15억원 초과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에서 '갭 투자'가 늘고 있다. 투자 목적으로 시세차익만 노리는 다주택자나 법인 수요가 아닌, 자산 증식 후 더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려는 '갈아타기' 수요다. 전문가들은 "딱 15억원 초과 아파트부터 대출을 금지한 규제가 시장을 왜곡하고 주거안정성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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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아파트 정보 앱 아실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서울 갭 투자 거래가 가장 많았던 곳은 서초, 강남, 송파, 노원, 강동 순이었다. 갭 투자 상위 지역은 서초구 77건, 강남구 59건, 송파구 58건 순으로 강남 3구가 차지했다. 네 번째가 노원구(50건)였는데, 갭 투자 건수로 보면 4위이지만 노원구 전체 거래량 중 갭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5.7%)은 강남보다 훨씬 적다. 즉 서초구 전체 거래 중 갭 투자 비중이 17%이니 노원은 실거주 매수자들이 많고, 강남은 갭 투자 비중이 높은 셈이다. 반포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갈아타려고 알아보다가 세입자 임차 기간이 걸리고, 대출도 안 나오니 전세를 안고 사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소위 '상급지'로 갈아타려는 사람들이 실거주가 힘들거나 자금이 부족해 갭 투자를 한다는 설명이다. 모자라는 자금은 매도자 전세 조건으로 채우기도 한다. 4년 전 서울 마포 아파트를 매수한 이 모씨는 매수할 아파트의 집주인이 전세를 사는 조건으로 간신히 강남으로 갈아타기에 성공했다. 비과세를 받아 시세차익 전부를 털어도 매수할 집 매매가격이 너무 올라 전세를 시세대로 맞춰도 2억원가량이 부족했다. 서초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집주인은 이미 시세차익을 본 상태이고 빨리 집을 처분하려 해서 매수자 상황을 고려해 본인이 전세를 살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집주인에게 돈을 빌리는 케이스도 있다. 서울 마곡 집을 팔고 송파로 갈아타려는 김 모씨는 현재 일산에 전세를 살면서 '갈아탈' 집을 물색했다. 그러던 중 송파에 매수할 집을 찾았는데 1억원가량이 모자랐다. 김씨는 "이미 신용대출을 다 받은 데다 추가 자금을 마련할 수 없어 전세를 살고 있는 집주인에게서 돈을 융통했다"며 "은행보다는 높은 이율(5%)이지만, 대출이 전혀 안 나오니 이렇게 해서라도 돈을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갈아타기' 수요는 30·40대가 주도하고 있다. 이번 부동산 상승장에서 '큰손'으로 떠오른 세대다. 3~4년 전 집을 사 '2년 비과세' 요건을 갖춘 뒤 자녀 학령기에 맞춰 중대형으로 갈아타거나 학군지로 이사 가기를 희망하는 수요다. 그런데 서울은 2019년 12·16 규제로 15억원 초과 주택은 대출이 금지돼 있다.

잠실에 전세를 안고 집을 매수한 주부 김 모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5~6년이 남아 우선 전세를 돌리며 기다려볼 생각이다. 대출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영원히 월세살이를 해야겠지만 지금 못 사면 집값이 더 올라 영원히 못 갈아탄다는 걱정이 더 크다"고 했다.

이촌동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더 좋은 곳에서 거주하고 싶은 게 사람 욕심인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대출을 묶어놓으니 실수요자들이 갭 투자로 몰렸다"며 "갈아타려는 사람들은 전세가가 높은 매물을 찾다보니 전세가도 올라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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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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