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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아이도 없는데 부담금을 내라고?"…지자체 주먹구구 행정에 소송 쏟아진다

유준호 기자
입력 : 
2021-09-26 17:13:49
수정 : 
2021-09-26 23: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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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식 용지비용 산정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덤터기
"인구 줄어도 기계적으로 산정"

최근 법원서 잇따라 제동 걸려
광명뉴타운·능곡1 재개발 지역
수십억원 학교부담금 잇단 취소

래미안원베일리도 소송 검토
사진설명
정비사업 추진이 활발한 경기도 광명역사거리 일대 전경. [매경DB]
재개발·재건축 현장 곳곳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엉터리로 산정한 학교용지부담금이 된서리를 맞고 있다. 최근 부과된 부담금을 두고 재건축·재개발 조합이 승소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자체가 다가구주택에 1가구만 거주하고 있다고 계산하는 등 기존 가구 수를 정확히 확인하지 않거나 학생 감소로 학교 신설 필요성이 없는데도 부담금을 부과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최근 재개발·재건축 조합 승소가 이어지자 서울 강남권 재개발 단지에서는 수십억 원대 학교용지부담금을 두고 소송을 준비하려는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26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수원지방법원 행정2부는 광명14구역 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 제기한 학교용지부담금 부과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측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9월 광명시청은 광명14구역 재개발조합에 18억6907만원의 학교용지부담금을 부과했는데, 이를 취소하라는 주문이다. 이후 광명시청은 항소를 포기해 1심 판결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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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용지부담금이란 100가구 이상 규모 개발 사업에 대해 개발사업자에게 학교 용지 확보와 학교 시설 증축 등을 위해 분양 가격의 0.8%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사업 시행 이후 늘어나는 가구 수가 부과 기준이 된다. 기존 가구 수를 과소 측정하면 사업 시행 이후 늘어나는 가구 수가 많아지므로 부담금이 커지는 구조다. 광명14구역에서도 지자체가 기존 가구 수를 과소 책정한 것이 문제가 됐다. 지자체는 건축물 대장을 기준으로 기존 가구를 734가구로 파악했는데, 재개발 조합이 사업 구역 내 거주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1045가구가 살고 있다고 맞섰다. 지자체가 다가구주택 상당수에 1가구만 살고 있다고 파악하면서 차이가 생겼다. 전입신고를 마친 가구를 조사하지 않고, 건축물 대장에 적혀 있는 가구 수만 기계적으로 끌어다 쓴 결과다. 광명15구역도 같은 사유로 16억5535만원에 달하는 학교용지부담금 부과가 취소됐다. 재판부는 "다가구주택의 구분된 각 부분은 독립된 주거공간으로 기능하므로 세입자가 살고 있는 다가주주택에 취학인구가 살지 않는다거나 공동주택보다 취학인구가 적다고 볼 수는 없다"며 "학교용지부담금을 부과하기 위해 기존 가구 수를 확인할 때 다가구주택 세입자를 기존 가구 수에서 제외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판시했다.

광명시청 교육청소년과 관계자는 "기존 가구 수 확인 때 세입자는 제외해야 한다는 교육부 해석을 따른 만큼 지자체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내린 부과 결정은 아니었다"며 "최근 교육부가 세입자를 포함하도록 하는 새로운 방침을 전달한 만큼 차후 부담금이 부과되는 사업지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능곡1구역에서는 학생 수 감소로 학교 신설 필요성이 없는데도 부담금이 부과됐다. 이곳에서는 인근 4개 초등학교 학생 수가 2017년 이후 3년 연속 감소했지만 고양시청은 사업 시행 이후 247가구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고 학교용지부담금 9억3892만원을 조합에 부과했다. 재판부는 "3년 이상 취학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학교 신설 수요가 없는 지역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해당 정비사업으로 인해 개발 지역 인근에 학교를 신설하거나 기존 학교 건물을 증축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서울 잠원동 신반포6차는 임대주택에 대해 부담금이 부과된 게 문제가 됐다. 현행법상 임대주택은 학교용지부담금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신반포6차 재건축 조합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라 지난해 2월 서울시에 53가구를 매도했고, 해당 법에 근거해 서울시는 해당 주택을 임대주택으로 활용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서초구청이 임대주택에 부과한 5170만원의 학교용지부담금이 위법한 것으로 봤다.

학교용지부담금과 관련해 재개발·재건축 조합의 승소 판결이 잇따르자 강남권 일부 단지도 소송전에 뛰어들 태세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역시 20억원에 달하는 학교용지부담금이 부과됐는데, 조합에서는 부담금이 과다 산정됐다고 봤다.

이준섭 법무법인 창천 변호사는 "학교용지부담금이 부과되면 90일 안에 다퉈야 하는데 조합이 소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학령인구가 줄어 학교 용지가 필요 없는 상황이나 현행법상 부과하지 않아야 하는 경우도 많지만 지자체에서는 기계적으로 부담금을 부과해 조합원들은 부당한 부담금을 짊어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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